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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오늘 채널

예술 오늘 채널 - 미켈란 젤로와 교황청 알아보기!

안녕하세요! 예술 오늘 채널입니다. 오늘은 미켈란 젤로와 교황청 알아보겠습니다.!

미켈란 젤로와 교황청 알아보기!

미켈란 젤로와 교황청!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만들며 르네상스로 전진하는 최초의 조각을 만들면서 전 이탈리아 반도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미켈란젤로는 30대 초반의 젊은 천재였습니다. 그의 실력을 본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로마로 그를 소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에게 최초로 의뢰한 것은 자신의 영묘 조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증축 사업에 너무나도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서 예산 부족으로 중단됩니다. 이때 네 점의 조각 중 한 점(모세)만이 완성되어 현재 로마 빙콜리 산 피에트르 교회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모세상을 보면 모세의 모습이 우람한 근육질의 몸매와 긴 수염을 가진 마치 타이탄처럼 보입니다. 이런 괴물 같은 선지자의 모습이 미켈란젤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이자 예술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에게 영향을 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

 일반적으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보고 '피에타'를 고유명사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 피에타는 애도라는 뜻으로 죽은 예수를 안고 애도하는 슬픈 성모 마리아의 조각이나 회화를 모두 피에타라고 합니다. 위 조각을 자세히 보면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다리에 올려놓고 있는데, 실제로는 성인 남성을 여성의 무릎 위에 올려 놓았을 때 남성의 신체가 흘러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각을 하다가 이러한 비례 상의 실수를 깨달은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의 무릎을 덮고 있는 옷자락의 주름을 풍성하게 표현하여 자신의 실수를 감추어 냈습니다. 또한 죽은 자신의 아들을 안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모의 얼굴에는 슬픔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젊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한 손으로만 예수를 받치고 있고 있습니다. 조각을 하던 당시 만 24세였던 미켈란젤로는 천재성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인간의 감정을 알기에는 어린 나이가 아니었나 싶은 느낌이 드는 조각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15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미켈란젤로의 조각 스타일은 상당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1499년 완성한 피에타와 그 이후에 완성한 조각의 인체 형상이 변화되었습니다. 피에타 상의 예수의 몸은 우람한 근육질이 아닌 미끈하고 마른 성인 남성의 몸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1506년 로마 근교의 포도밭에서 '라오콘 군상(기원전 300-200년경 작품을 1~2세기경에 로마인이 대리석으로 모각한 것)'이 발굴되면서 미켈란젤로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본인을 조각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스티나의 천장화를 그리는 것도 한 번 거절했었다고 합니다. 재차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그림을 그려주기를 요청했을 때 천지창조를 그리게 되었는데 20m의 높이에 9개의 장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와 무녀들을 그리게 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의 신체가 우람한 라오콘 군상의 육체의 형상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지창조 중 아담과 이브

천지의 창조부터 노아의 홍수까지 구약성서의 창세기 1장을 주제로 9장면으로 구성된 시스티나 프레스코 천장화는 앞서 말한듯이 고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이 많이 엿보이는 모습입니다. 그중 아담과 이브의 '유혹과 추방'의 뱀은 라오콘 군상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모든 인체가 인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고 이는 라오콘 군상(그리스 조각)의 이상적이고 웅대한 육체를 회화로 재현하려고 한 듯한 모습입니다.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에서의 아담의 나른한 포즈 또한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강의 신의 포즈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옆에 있는 여성은 아직 창조하지 않은 이브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고대 그리스 조각의 재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트로이 장군의 모습이었던 벨베데레의 토르소를 완벽한 모습으로 복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지금 상태로도 이미 완벽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 조각을 보고 천지창조를 그렸기 때문에 조각의 포즈나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담한 구성과 철학적인 내용에서 미켈란젤로라는 젊은 예술가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열정이 가득 찼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린 이후에도 늘 조각이 회화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조각 수정 요구에도 이를 거정 할 정도로 자신의 작품과 조각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6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모성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자랐다고 하는데 그러한 점이 미켈란젤로가 여성을 표현할 때 여성성이나 모성애가 두드러지지 않는 특징이 되었습니다. 조각은 회화를 닮을수록 불완전해지는 반면, 회화는 조각을 닮을수록 완벽해진다.


최후의 심판 - 이상적 육체에 대한 숭배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린 약 30년 뒤에 천지창조를 그린 아로 옆의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됩니다. 최후의 심판에서도 미켈란젤로가 인간의 이상적인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특히 예수의 몸을 마치 고대 로마의 장군(벨베데레의 토르소)을 연상시키듯 우람하게 표현한 부분입니다. 예수와 천사들의 몸에 늘 당연히 달고 있는 날개와 후광을 생략한 점 또한 인간의 육체에 대한 숭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훗날 '벌거숭이들의 욕탕'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예수를 제외한 모든 부분들이 예수를 중심으로 회오리치듯 돌아가고 있는 점이 종교개혁의 여파로 인한 천지창조에 비해 한층 음울해진 세계관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옥으로 가기 전에 카론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천지창조'의 지옥으로 가는 강의 장면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론의 강'의 모티브를 그대로 빌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뒤에도 오랫동안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고 8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만년에는 종교에 깊이 심취하여 종교적 열정이 작품의 완성도를 앞지를 경향을 보일 정도 였습니다. 위 사진에 나와있는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피렌체 조각을 자세히 보시면 예수의 한쪽 다리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75세에 그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만든 작품인데 작품을 제작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자 직접 망치를 들고 작품을 파손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