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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오늘 채널

예술 오늘 채널 - 피라미드의 건축 이유 알아보기!

안녕하세요! 예술 오늘 채널입니다. 오늘은 피라미드의 건축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피라미드의 건축 이유!

피라미드의 건축 이유!

 고대 이집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피라미드, 미라,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등이 있을 것입니다.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자 가장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고대부터 21세기까지 인류가 만든 모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가장 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기자에 가면 세 개의 큰 피라미드인 쿠푸, 카프라, 멘카우레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있고, 그 앞에 작은 세 개의 계단식 파라오의 아내인 왕비의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오시리스, 죽은 자들의 신 피라미드란?

 죽은 파라오를 위한 무덤입니다. 현재는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140세 시대라고 불리기도 할 만큼 우리에게 죽음은 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나 중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남자의 평균 수명이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영아 사망률 또한 높았기 때문에 고대 문명과 중세, 근대까지의 사람들은 죽음을 항상 가까이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예술품 중에는 죽음에 대해서 상기시키는 작품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집트의 경우는 이 중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경우에 속합니다. 이집트는 나일강 부근의 사막에 있었던 국가로 연 강수량이 10mm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고대 문명은 물이 풍부한 곳에서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물이 부족했던 이집트에서 어떻게 고대 문명을 꽃피우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나일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나일강은 1년에 한 번씩 범람해서 식수를 얻고 곡식을 키울 수 있게 했습니다. 범람을 통해 죽은 땅을 다시 살린다는 것을 일종의 부활의 개념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받아들였습니다. 죽은 땅이 다시 살아난다면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영혼이 죽지 않고 살아서 언젠가는 그 영혼이 다시 자신의 몸에 들어가면 그 몸을 가지고 다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라를 만든 것도 죽은 사람이 언젠가 다시 부활하면 그 몸을 다시 써야하기 때문이고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이 사라지면 영혼이 다시 돌아올 곳이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 건축 이유

 네스크혼스 왕비의 카노푸스 단지(대영박물관 소장) 피라미드 역시 육신이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 영혼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라 처리에 상당히 과학적인 방법이 도입되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들을 볼 수 있는데 미라의 경우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과 죽음의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최초의 미라는 사막 기후에 의한 자연 건조된 미라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 자연 건조된 미라를 보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후에 사람의 몸을 썩지 않게 보존할 수 있는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카노푸스 단지는 미라를 만들기 전에 죽은 자의 시신에서 나온 장기를 보관하는 단지입니다. 장기를 따로 보관해 무덤에 함께 두게 됩니다. 또, 부활의 상징인 쇠똥구리 모양의 장식물인 스카라베를 시신의 가슴위에 올려두어 다시 한번 살아나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부적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투탕카멘의 황금 데스마스크 / 투탕카멘의 이중 관 중 바깥쪽의 석관

 미라 제조 전문가들은 붕대로 감은 미라 위에 데스마스크를 씌웠습니다. 데스마스크, 나무 관, 석관의 순서로 관을 배치하여 피라미드나 왕들의 무덤에 배치하게 되었습니다. 관을 만든 후에 고인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내세로 가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서 파피루스 문서로 무덤 옆에 비치하게 됩니다. 

사자의 서

이것을 사자의 서라고 부르는데 죽은 이의 신장과 진리의 깃털의 무게를 재는 장면이 그려지게 됩니다. 이 둘의 무게가 같아야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강을 건너 내세로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후에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내세로 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실제로 피라미드 근처에서는 나무로 된 배가 출토되었습니다. 내세로 갈 고인을 위한 부장품인 셈입니다. ​이집트의 역사는 크게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으로 나뉩니다. 피라미드는 대부분 고왕국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이는 두 가지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왕국시대의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왕조가 중왕국, 신왕국 시대에는 상당히 약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하나는 눈에 띄게 무덤을 만들면 도굴의 위험이 높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입구를 찾을 수 없게 왕들의 계곡 속에 무덤을 만들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동원된 인력은 모두 노예가 아닌 월급을 받는 노동자였다고 합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뛰어난 수준을 알려주는 하나의 단서이기도 하고 죽은 파라오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숭배 감정이 상당히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