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오늘 채널

예술 오늘 채널 - 낭만주의의 미학 알아보기!

크리트네트스 2020. 7. 14. 17:18

안녕하세요! 예술 오늘 채널입니다. 오늘은 낭만주의의 미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낭만주의의 미학

낭만주의의 미학!

낭만주의 미학 사상과 피히테의 학문론 지식학과는 연속성과 차이라는 이중적 관계에 놓여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피히테의 사유를 미학의 영역에 적용 시 키면서도, 다른 한편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계몽적 이성을 넘어서려고 시도한다. 그 대표적인 시도가 1795년 출판된 <그리스 시의 연구에 대하여>라는 글이다. 여기서 슐레겔은 미의 역사를 ①미의 자연상태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그리스 로마의 예술과, ②자유로운 개성과 독창성의 발휘로 특징지어지는 근대의 예술, ③자연과 자유의 대립의 극복과 재통합을 모색하는 낭만주의 예술로의 이행이라는 3단계로 구분한다. 시대를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 슐레겔이 낭만주의 미학에 부여한 과제는 자연과 자유의 분리와 분열의 극복에 있다. 그런데 낭만주의자들은 피히테의 이성적 사유 주체 안에서의 주관적 통합만으로는 일면적이며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이때 자유와 자연의 근원적 통일의 추구라는 낭만주의의 정체성과 목표에 깊은 영감을 준 것은 기독교의 사랑의 힘의 재발견이었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와 관념론 전통에 의해 억압되고 망각되고 무시되어온 인간과 문화의 중요한 원천인 사랑의 힘을 기억하고 되찾아 부활시키려고 했다.

 
예술가는 사랑의 힘을 통해서만 정신과 자연을 낭만화할 수 있고, 세계의 잃어버린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끼고 재발견하며 재창조할 수 있다.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소외되고 분열된 자아 내부의 힘들인 영혼과 육체, 이성과 감정은 물론 자연 및 타인과의 진실한 교제를 회복할 수 있고, 세계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대립과 갈등을 화해시키고 통일하는 열쇠인 것이다. 

피히테의 긍정적 수용

 초기 슐레겔의 사유에서 낭만주의의 이론적 모델은 피히테의 학문론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슐레겔 자신이 피히테의 학문론을 언급하면서 스스로를 피히테의 제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는 점은 양자의 연속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례이다. 그는 라이프니츠, 칸트, 라인홀트, 피히테로 이어지는 독일 철학자들의 계본 속에 스스로를 편입시킴으로써 독일 이상주의 철학과의 정신적인 친화성을 보여 준다. 그 이유는 낭만주의자의 칸트, 피히테의 사상 긍정은 그들의 철학이 근대의 특징인 자유의 정신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즉 자아의 자기정립과 비아의 정립을, '너는 너와 세계를 변혁하고 창조하라!'는  예술 창조의 당위적 명령이자 요청으로 수용한 것이다. 특히 슐레겔은 피히테의 학문론이 프랑스혁명을 완수한 것으로 보았다. 슐레겔의 미적 혁명,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요구는 도덕적 정치적 자유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학문론의 체계에 대한 낭만주의의 관점은 양면적 긴장관계 속에 있다.  체계는 그에 다가가야 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기 때문이다. 노발리스 역시 슐레겔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피히테의 계승자로 이해했다. 그는 피히테 철학에서의 시도를, 낭만적인 예술로 전환시켜 모든 예술과 학문, 사회에 까지 확장하고 모든 인류 문화를 예술작품으로 재창조하고자 시도했다. 

피히테의 비판적 극복 

낭만주의 미학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슐레겔이 이렇듯 피히테의 사상적 계승자임을 자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피히테 자신은 미학적 문제에 관해 어떤 관점도 표명하지 않았다. 피히테의 관심은 자신의 체계를 건축하려는 목표에 주로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슐레겔은 다음과 같이 불만을 토로한다. "학문론은 너무 좁다. 예술도 마찬가지 권리를 지니며 또한 예술에서 이끌어내어져야 한다. 피히테에게 있어 미학의 결여는 슐레겔에게 하나의 결함으로 여겨졌고, 그는 이 부족함을 채우고자 시도한다. 뿐만 아니라 자아라는 제1원리 명제 1로부터 증명된 완전한 체계라는 학문론의 이상은 낭만주의자의 눈에는 객관적 지식의 구성적 원리가 아니라 결코 완전히 도달될 수 없지만 무한히 추구해나가야 할 주관의 규제적 이상으로 보였다. 따라서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의 체계는 객관적 타당성이 증명될 수 없는 하나의 소설 작품에 비견된다. 노발리스는 피히테를 학자라기보다 발명가라고 부르고 '누군가 피히테처럼 사유한다면 놀라운 예술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낭만주의자인 슐레겔과 노발리스가 추구한 새로운 미학은 피히테 철학을 미학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점에서 슐레겔과 노발리스는 스스로 명명했듯이 피히테의 제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피히테가 제시한 싹을 꽃피워 낭만주의의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자 했음을 드러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