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오늘 채널 - 포에지의 낭만 주의!
안녕하세요! 예술 오늘 채널입니다. 오늘은 포에지의 낭만주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포에지의 낭만주의!
초기 낭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인 포에지는 가장 넓은 의미의 시이고 가장 넓은 의미의 문학이며 그 이상이기도 하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포에지라는 말을 이중적으로 사용하는데, 한 번은 작품들을 지칭-문학과 시-하고 다른 한 번은 시문학의 본질적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다. 곧 그리스 문학, 즉 서사시나 서정시나 비극은 모두 시였고 이들 작가들은 모두 시인이었다. 따라서 포에지는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넓은 의미에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자, 문학에 대한 총체적이고 상징적인 은유로서의 시를 동시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슐레겔의 전자의 의미이다. 후자의 경우, 즉 포에지 개념 자기 스스로를 생산하는 것을 포이에시스 Poiesis(생산) 개념과 어원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연결시켜, 창작하고 허구를 만들어내는 성격과 능력 자체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낭만주의 포에지는 단순히 분리되어 있던 모든 시문학 장르들을 다시 통합하고, 시문학을 철학과 수사학과 접목시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낭만주의 포에지가 해야 하는 것은 시문학과 산문을, 독창성과 비평을, 인공시(창작시)와 자연시(민족 서사시)를 서로 융합하고 섞는 것이다. 반면 삶과 사회는 시적으로 만들며 예술형식들은 모든 종류의 진정한 교양의 재료들로 가득 채우고 넘쳐나게 하는 것이다. 낭만주의 포에지만이 서사시처럼 주위의 모든 세계를 비추는 거울, 시대상의 반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 포에지는 대부분의 경우 묘사된 것과 묘사하는 것 사이에서 모든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시적 성찰의 날개를 타고 중간에서 떠다니며, 이 성찰을 계속 증가시켜 마치 어떤 끝없이 이어진 거울들이 비추는 상들처럼 무한히 늘릴 수 있다. 낭만주의 포에지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최고도로 형성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단지 내부로부터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부터 안으로까지도 그렇게 하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산물들에서 전체가 되어야 할 각각의 것들과 유사하도록 모든 부분들을 조직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무한히 성장하는 고전성의 전망이 낭만주의 포에지에서 열리게 된다. 그러나 낭만주의 문학 장르는 여전히 생성 Poiesis 중에 있다. 즉 영원히 생성되고 있으며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낭만주의 문학 장르의 고유한 본질이다. 따라서 낭만주의 문학 장르만이 무한하고, 또 그렇게 자유롭다.
프리드리히 슐레겔 아테네움 단상
포에지는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며, 모든 예술 도처에 존재하는 보편 정신과 같은 것이다. 다른 예술 형식을 통한 묘사에서도 익숙한 현실을 넘어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고양시키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 예술이 가지고 있는 시문학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의미에서 포에지라는 말은 예술적 창작 전반을, 이 예술 창작을 통해 자연을 풍부하게 하는 경이로운 행위 자체를 가리킨다. 단어 자체가 표현하고 있듯 진정한 창조이자 생산인 것이다. 포에지는 인간 형성의 전 과정에서 그 어떠한 기간에도 인간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포에지는 가장 근원적인 것, 말하자면 모든 예술의 시원 예술이며 모태예술인 동시에, 인간의 마지막 완성이기도 하다. 즉 모든 것이 그리로 흘러 들어가는 대양인 것이다. 시문학은 모든 곳에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트 슐레겔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강의
철학은 그 자체로 학문들중의 최고 학문이다. 철학의 본질 전체는 철학이 처음에 개별 학문에 불어넣었던 힘과 정신을 교대로 받아들인 다음 더욱 강하게 발산하여 그 힘과 정신이 더욱 풍부해져서 다시 돌아오도록 하는 데 있다. 하지만 철학만으로는 그 정신에 가하는 힘이 부족하다. 이때 포에지를 통해 그 힘을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 포에지는 강력한 생성의 에네르기이기 때문이다. 즉 포에지가 없다면 철학은 힘없고 어둡고 거짓이며 위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포에지와 철학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개체성과 법칙성 사이에 법칙적으로 조직된 유기적 상호 교체는 포에지와 철학이 상호 조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를 매일 목격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질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즉 중심에서는 그들의 상이한 경향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또한 위대하고 숭고한 인간의 체계 가장 바깥 영역을 포에지와 철학은 각각 나누어 담당한다. 이곳 가장 내밀하고 가장 신성한 곳-바깥-에서 정신은 전체가 되며, 포에지와 철학은 하나가 되어 서로 융합된다. 철학과 포에지의 세계정신이 없는 모든 것은 저속하다. 철학과 포에지만이 전체적이며, 이것만이 모든 구체적인 학문과 예술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의 전체로 만들고 통합할 수 있다. 오로지 철학과 포에지를 통해서만 작품 하나하나는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으며, 오로지 철학과 포에지에 대해서만이 일찍이 생겨났던 작품은 하나의 조직으로 짜인 전체의 구성요소들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셸링에 따르면 포에지는 모든 예술의 본질인데, 그것은 대략 영혼이 육체의 본질인 것과 같다. 셸링은 포에지를 "철학의 유일하게 참되고 영원한 오르가논의 증서"로 규정하였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에 따르면 포에지는 또한 모든 예술들의 가장 포괄적인 예술, 마치 도처에서 현현하는 우주적인 정신의 예술 같은 것이며, 노발리스는 포에지를 진정 절대적으로 실재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즉 그에게 포에지는 시적, 창조적, 정신적이라는 용어들의 통일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종합적으로 포에지는 우주적 포에지로 그것은 전체적인, 에워싸고 있는 세계의 거울이다.